4월
월간 치치
날이 부쩍 좋아졌어요. 서울의 날씨는 곧 언제 좋았냐는 듯 추웠다 더웠다 변덕을 시작하겠지만. 다들 벚나무 구경들은 하셨는지? 제 산책길엔 벚나무가 엄청 많아서 이맘 때 걷기가 아주 좋아요. 작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엔 유독 관광객이 많더라고요. 서울사람들이 다 여기에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광객으로 가득찬 양재천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양재천 좋지. 여의천도. 근데 흠 그정둔가 싶었다가. 여기저기서 몰려온 사람들인 이제 여기 올 일 없다는듯이 쓰레기를 투기하고. 관광객과 주민의 마찰이 왜 생기는지 알 것 같더이다. 작년에도 이랬었나. 작년엔 사람이 이렇게 발디딜 틈 없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많은 도시에 많은 공원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고평가와 저평가
누군가 어떤 맥락에서 고평가와 저평가를 절대적인 기준의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걸 교정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다가 말았습니다. 고평가/저평가는 상대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므로 절대적인 기준에서 높은/낮은 평가를 한다/받는다는 의미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단어경찰
제가 집착하는 단어들이 좀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맥락과 관련된 단어에요. 맥락 이해도에 차이가 있다면 필연적으로 오해를 낳는 단어들. 맥락 이해를 위한 대화에 이런 단어가 끼어들면 갑자기 피곤해집니다. 이게 신기하다 당연하다의 이해를 위한 최신 설명입니다.
요즘엔 많은것을 자기복제한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완성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나를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고 바래봅니다.
이번 달에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글. 유튜브 @DeviHC 님이 작성한 댓글입니다.
영상 속 캐릭터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발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을 변형시키던 피곤한 연극을 끝낸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건강'을 명분 내세워 타인에게 독설을 내뱉지만, 건강이 모든 사람의 삶에서 항상 1순위일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질환이나 심리적 외상, 혹은 물리적인 시간의 부재로 인해 변화가 '할 수 없는(Can't)' 영역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장 변할 수 없는 상태일지라도,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비하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진정한 실존적 독립성은 타인의 인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족함을 부끄러워해야 노력한다"는 논리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습니다. 수치심은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영혼을 파괴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수치심이 아니라 안전함과 자기 수용에서 시작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계발의 성공 보상이 아닙니다. 자신과 '조건부 계약'을 맺는 순간, 자존감은 외부 환경과 성취도에 종속될 뿐입니다. 발전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선택지이지, 존재의 허가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발전하지않으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나요? 당신의 love yourself는 조건부 사랑인가요? 어쩌면 우리 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더워지기 전에 매헌시민의숲에, 양재천에, 서울숲에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