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다 당연하다

저는 ‘신기하다’는 말과 ‘당연하다’는 말을 의식하며 듣습니다. 저는 이 두가지 단어가 도통 쉽게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두 단어를 들으면 우선 머릿속에 단어를 잡아놨다가, 화자의 맥락과 늬앙스가 모두 전달될 때 까지 놓아주질 않습니다.

심지어는 머리속에 두 단어의 자리가 있고, 들을 때 마다 각 단어에 바를정자 한 획 씩 쓰며 이 대화에서 신기하다와 당연하다가 각각 몇 번 씩 쓰였는지를 셉니다. 반사적으로 이뤄지는 일이에요. 이런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오 신기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머릿속에 바를정자 한 획을 더 긋고요.

신기하다

신기하다는 것은 뭘까요? 우리는 언제 신기하다는 말을 하나요?

새롭다. 낯설다. 익숙하지 않다. 이해되지 않는다.

낯선 것이 신기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 보는 것은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을 신기하다고 표현하는 걸지도요.

재밌다. 흥미롭다.

유희를 제공받았을 때에도 신기하다고 합니다. 흥미가 생겨 더 알고 싶을 때 ‘오 그거 정말 흥미로운데? 더 얘기해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다’고도 합니다.

놀랍다. 경이롭다.

어떤 경이로움을 경험할 때에도 신기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한여름에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이라던지, 태평양을 쉬지 않고 건너는 철새 떼를 볼 때에요.

우연하다.

우연이 겹치고 겹칠 때 신기하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때마침 문이 열린다던지, 항상 만석이던 주차장에 때마침 자리 한 칸이 났다던지, 게임 첫 판에 이기는 초심자의 행운같은 걸 볼 때요.


이렇듯 다양한 맥락과 관점에서 모두 ‘신기하다’는 단어가 쓰이기 때문에, 저는 어떤 관점에서 ‘신기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대화의 주제가 끝날 때 까지 신기하다는 말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의식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왜 신기해하는지 이해하는 일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떤 것이 신기한 것인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여러번 해야합니다. 심지어는 나도 신기하고 상대방도 신기한 일이 있어도 서로 다른 이유로 신기하게 느낄 수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

한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제 친구 데이빗은 카드 마술을 할 줄 압니다. 데이빗이 카드 마술을 보여주었을 때, 제인과 브라운이 동시에 신기해합니다.

제인은 마술이 놀랍습니다. 어떻게 내가 마음속으로 고른 카드가 데이빗의 주머니 속에서 등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도저히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신기합니다.

브라운은 데이빗이 카드 마술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마술 학원에서 배운 것일까? 유튜브를 보며 독학한 것일까? 집중하며 카드를 섞는 데이빗을 상상하니 왠지 웃음이 납니다. 신기합니다.

제인은 카드 마술 그 자체가 신기하고, 브라운은 데이빗이 카드 마술을 하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맥락에서 신기하다는 단어를 쓰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일상적이지 않고 새로운 자극이라는 점입니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본 사람은 신기할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일상적으로 접합니다. 익숙한 것은 이제 더이상 신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화의 맥락이 종료될 때 까지 신기하다는 단어를 머릿속에 계속 쥐고있고, 그 신기함이 정확히 어떤 신기함인지가 명확히 해소될 때 까지 되뇌입니다. 신기하다는 것은 나에게 낯선 것임을 드러내지만, 대상이나 혹은 대상에 대한 판단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당연하다

반면 당연하다는 말은 신기하다와 반대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어떤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때 ‘당연하다’고 하죠.

무언갈 질문할 때, 답으로 ‘당연히’, ‘당연하게’로 시작하는 문장을 들으면 어떤 관점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돼요. 맥락이 생략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생각하게 됩니다. 왜 상대방에게 당연한 것이 나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듣는이에게 혼란을 줍니다.

당연한 일이 왜 당연한지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말은 다른 어떤 설명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집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서로의 이해도가 비슷하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해도 차이가 난다면 추가적인 질문을 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마치며

이런 이유로 ‘신기하다’, ‘당연하다’는 두 단어는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습니다. 네? 이런 제가 신기하다고요? 신기한게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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