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로 불리는 아싸의 설움에 대하여

나는 남들과 쉽게 친해지질 못한다. 개인과 개인이 친해지는 것은 물론, 어떤 집단에 섞이는 것도 힘들다.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아싸’라는 것을 밝히면 너 같은 ‘인싸’가 어디있냐면서 놀리지만, 사실이 아싸인 것을 아닌 척 할 수 없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 일이다. 용인에서 성남으로 이사를 하고 전학을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엄마가 선생님이랑 통화를 했는데 선생님 말하길, 나와 친해지려는 친구들은 많은데 내가 그들을 따돌리더란다. 지금에서야 ‘내가 따돌림 당하는 것이 아닌 내가 세상을 따돌린다’는 류의 농담을 한번쯤 들어보았겠지만 15년 전의 저 말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고 대체 어떤 자가 나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했었는지 되돌아 본 기억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애들 착해요. 치웅이가 적응을 잘 못하고 있기는 한데, 그게 텃세 때문은 아니랍니다’를 에둘러 표한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선생님의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지. 친구들은 호의를 보였지만 뼛속까지 개인주의자인 나는 그것을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심지어는 그런 종류의 호의를 공격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개인주의자에게 공동체의 호의는 달갑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혼자 가만히 있는 나를 ‘생각해서’ 같이 공차기를 하자고 ‘해준다’던가, 술자리에 나오라고 여러번 권한다던가 하는 이런 일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인 영화를 보러 가자던가, 게임을 하자던가, 음반샵에 가자던가 하는 제안은 좋다. 다만 내가 별로 관심 없는 일에 참여제안을 한단던지 하는 호의는 호의로 느껴지지 않고 그저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NO]’ 정도의 컨펌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나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못한다. 컨펌에 답을 하면 그 답이 실제 내 뜻이다. 그렇기에 여러번 물어보는 것은 웹 브라우저에 같은 팝업이 여러번 뜨는 것 같은 귀찮음만 느껴질 뿐이다.

이런 기저가 나를 구성하는 바탕인 탓에 남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첫 대화가 우연히 내가 관심있어하는 주제라면 한참을 이어갈 수 있지만, 내가 전혀 관심이 없는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면 재미없는 티를 못 숨긴다. 이런한 시도가 서로 몇 번 오갔음에도 내 흥미를 유발하지 못 하면 그냥 그렇게 어색한 관계로 남는다. 이렇다보니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쉽지가 않다.

(평소엔 인식하지도 못하지만)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중이기 때문에 4월 한 달간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왔다. 그 곳엔 좋든 싫든 4주 동안 함께 생활해야 하는 사람이 10명이나 붙어있었다. 4주를 함께 식사하고, 씻고, 자고 하면 친해질 법도 한데 나는 전혀 그러질 못 했다.

4주나 되는 시간동안 친해질 계기가 전혀 없었는가 묻는다면, 아니다. 분명 내가 관심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넓게는 영화, 좁게는 남자 승무원이 영어로 뭐냐는 질문까지. 내가 끼어들어 이야기꽃을 피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나는 대화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참여한 대화는 오직 훈련소 생활에 필요한 대화들 뿐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1등하는 건 나중 일이고, 일단 과락은 면해야 한다. 내게 과락은 차별 및 혐오표현, 불법행위이고 그 사람들은 과락을 면하지 못했다. 친해질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나 때로는 관계에서 친해져선 안 되는 이유가 더 중요하기도하다. 그래서 나는 과락한 그들과는 도저히 친해질 수 없었던 것이다.

훈련소에서의 생활이 끝나갈 즈음 해서는 여기저기 숨어있는 개발자들을 수소문하고 한 데 모아 네트워킹을 계획했고 실제로 성공할 뻔 했지만(모인지 8분만에 강제 해산당했다), 이 것은 사회적인 활동이다. 친밀감을 나누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다행히도 내가 몸담고 있는 기술기반의 스타트업에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내가 외톨이로 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이는 업계 종사자들도 (좋든 싫든) 그렇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굳이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이유는 안정적이고 도전적이지 않은 일보다는 역동적이고 도전적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이런 성장 욕구를 가진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고 호감을 느낀다.

나는 대체로 개발자에게 호감과 친밀감을 느낀다. 이것은 단지 나와 같은 직업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개발자라면 대체로 훌륭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나는 훈련소에 있었기 때문에 부재자사전투표를 했다. 사전에 투표하러갈 인원을 조사했을 때, 거의 9할에 육박하는 인원이 투표를 희망했다. 투표소와의 거리는 3km, 왕복 6km의 거리를 걸어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이 넘는 사람들이 3시간 걷지 않기 위해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 우리 분대엔 개발자가 총 세 명 있었는데, 이 세 명만 여전히 투표를 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개발자들, 넓게는 업계 종사자들을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인싸란 무엇일까. 인싸를 ‘처음 본 사람과 금새 친해지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나는 인싸가 아니다. 만약 인싸를 ‘나를 신뢰하고 나도 신뢰하는 상호 신뢰의 관계에서, 진심과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인싸 그런 뜻 아니라고 말하고싶다. 나는 아싸.

0
👍
0
❤️
0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