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오는 느낌

2023.09.28

현대 인류가 24시간 루틴에 꼭 맞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다. 해가 진 밤에도 문을 여는 상점과 식당과 카페가 있고 적잖은 수의 사람이 밤에 깨어있고 밤에 일한다. 팬데믹 이후에 원격 근무가 일반화 되고 분기에 한번 회식하기 위해 나가는 게 아니라면 모니터에 비친 얼굴만 보기도 한다. 30시간에 맞춰 살아도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오래된 수면 장애를 갖고 있다.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중학교에 다니던 때다. 잠들긴 어렵고 아침이면 엄마가 날 깨우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알람을 10개 이상 맞추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에 들지 못한다. 알람을 설정하고, 볼륨을 최대로 설정하고, 진동 패턴을 바꾸고, 지금보다 1분 뒤로 알람을 하나 더 만들어 알람이 진짜 울리긴 하는지 시험한다. 역시나 알람은 시간이 되면 울리지만 깨어나면 알람을 들은 기억이나 해제한 기억이 없다.

어지간한 날에는 새벽 세네시까지 잠들지 못하는데, 또 세네시 쯤 되면 온몸이 피곤해서 기절하듯 잠든다. 몸이 피곤한 상태로 자야겠단 마음을 먹고 나서 두 시간은 더 '자려고 노력하는' 상태로 있는다. 몸이 말짱하면 차라리 깨어 있을텐데, 내 몸은 제발 재워달라고 애원하지만 정신이 내 몸을 놓아주지 않는다. 잠들만 하면 불안이 몸을 간지럽힌다. 이러다보니 가위에 잘 눌린다. 오늘은 틀림없이 가위에 눌리겠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차라리 가위라도 눌려야 몸은 쉴텐데 생각한다. 이렇게 한 번 잠들면 잘 일어나지 못하는데, 윗 집에서 알람 좀 끄거나 소리를 줄이라고 민원이 왔을 정도다. 나는 알람이 잘 동작한다는 사실을 윗집의 민원으로 알게 됐다.

나의 '30시간 루틴론'은 그렇게 탄생했다. 남들보다 4시간 더 깨어있고 2시간 더 자는 루틴. 어쩌면 나는 수면과 비수면의 사이클이 30시간에 최적화 된 신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바로 30시간 루틴론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24시간 루틴을 살 때 나 혼자 30시간 루틴을 살면 매일 6시간의 시차가 발생한다. 나흘 중 하루만 24시간 루틴자들과 낮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24시간 루틴에 맞추기로 했다. (다른 인간종이 다 24시간에 맞춰 사는데 나만 30시간에 맞춰진 특별한 돌연변이일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 것으론 잠들기 위한 고통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처음엔 영양제 형태의 멜라토닌으로 시작했다. 도움은 되지만 여전히 잠들 때 까지 한시간 이상을 뒤척인다. 특히나 금세 잠들기에 성공하지 않으면 찾아오는 불안은 심장 주변을 시작으로 온몸을 간질거렸다. 다음으론 수면유도제를 시도했다. 수면유도제는 어느샌가 나를 잠들게 하긴 했지만 역시나 실패하면 불쾌한 간질거림이 시작됐다. 더 불쾌한 건 다음 날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도 다리가 풀릴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이번엔 신경안정제를 시도했다. 신세계였다. 한 알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잠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시도했던 방법들이 우스울 정도로 기분 좋게 잠이 왔고, 다음날엔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나로서는 드문 경험이다.

한 달 정도 안정된 수면을 하며 행복했다. 하지만 신경안정제에 의존하면 신경안정제 없이 잠들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데다 복용이 누적될 수록 잠에 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결국 멜라토닌 계열로 돌아왔다. 한편으론 분통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도 적절한 시간에 자려 누우면 이렇게 달콤한 잠을 자고, 충분한 수면을 하면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는 것이 그러지 못하는 나를 외롭게 했다.

특이한 경험을 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 오는 느낌이 들었다. 신경안정제를 먹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잠 오는 느낌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생각했다. 잠 오는 느낌에 집중하다 문득, 잠 오는 느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잠에 들기 위한 과정에 고통이 없어서 편안한 것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