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월간 치치
안녕 여러분. 그간 평안하셨는지? 이번 달은 내가 가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유독 느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넘치고 넘치는데 그것들을 좋아할 시간이 너무나 모자라. 다르게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시간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이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한 시간이라도 더 하는 한 달을 보내길 바래봅니다.
오전 11시, 벨 누르는 소리에 깼다. 요 며칠간 해가 뜨고 잠들었으므로 숙면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깨어난 것에 짜증이 밀려왔는데 얼마 전에 저당 아이스크림을 잔뜩 주문했기 때문에 혹시 냉동식품을 배송하면서 벨을 눌렀나 상상하며 일어나 밖에 나가봤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직 배송 시작도 안 했으며 그새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고 등기우편 찾아가라는 안내 쪽지만 도어락에 붙어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등기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 상상하며 진짜 별 거 아닌 걸로 등기 보내 나 깨웠으면 진짜… 진짜…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복수할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침에 못 깨는 걸로 슬 걱정하던 차 깨어난 김에 일어날까 아님 다시 잠들까 고민하던 차에 윗집에서는 대체 뭐 하는 건지 바닥을 맷돌로 전부 갈아버릴 건지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가 5분째 들리고 있으므로 분노의 대상이 등기우편에서 윗집의 괴소음으로 옮겨갔으며 다시 5분이나 더 괴소음이 들려 다시 잠에 들진 못하고 피곤하기만 하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분노는 금세 흩어져 더 이상 남지 않고 아침 일찍 깨어난 미라클모닝 치치는 남았다는 것이다. (나에겐 오전 11시도 미라클모닝 ㅎ)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뇌가 정말 놀랍다는 생각과 수많은 내 윗 세대들이 돌연변이의 돌연변이를 거쳐 나의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증조할아버지의 고조할머니 단세포 생물로부터 지금의 내 뇌가 되었다니 그것 정말 놀랍고 놀랍고 은혜로운 일이면서 그 놀라운 일을 생각하니 언젠가 이 세상에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슈피리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만 같다. 스탠리 할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구먼?
1.
"저기요. 함수 여러개 한 파일에 담지 마세요. 배송중에 섞이면 어떡해요."
2.
"왜 그래야 하나요?" 파일 하나에 함수 하나만 담으라는 팀장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팀장님은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하 앤드류가 아직 더 배워야겠어요. 한 파일에 함수 여러 개를 담으면 배송사고가 날 수가 있어요."
나는 그런 꿀팁들을 전자노트에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49페이지 마지막 줄에 '한 파일에는 한 함수만 담는다. 배송사고 날 수 있음.'를 기록하니 전자노트 구석에 '추가 공간이 1% 남았습니다. 유료 플랜으로 전환해서 계속 기록하세요.' 하는 알림이 떴다.
배송사고가 도대체 무슨 의미지? 그러나 의문점을 기록하기엔 노트 공간이 부족했다. 팀장님에게는 더더욱 묻지 않았다. 같은 팀 동료 레이먼드 말하길, 소문에 로라가 팀장님에게 설명을 여러 번 요구했다는 이유로 팀장님이 로라에게 기본도 없이 나댄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열 번 더 생각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시 와라, 이해력이 부족해서 같은 얘기 반복하게 한다는 등의 폭언을 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로라는 입사했을 때의 밝고 생기 넘치는 모습을 모두 잃은 채 지난달 퇴사했다. 팀장님은 나에게 친절히 대했기 때문에 그 소문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2년 차 전달자인 내가 팀장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것은 없으니까.
(계속)
평소에 점진적으로 청소하다가 집에 손님이 오면 대청소를 하게 되는데 아뿔싸 5년 쓴 청소기가 드디어 맛탱이가 가서 30초 돌리고 30분 충전하는 지경이 되어 '청소기' 키워드로 특가 알림을 걸어둔지 하루만에 로봇청소기 역대가라는 알림을 받아 충동구매 했더랍니다. 청소기에 이름을 부여하고 뽈뽈뽈 돌아다니는 꼴을 구경하자니 여간 손이 가는게 아닙니다. 케이블을 자꾸 먹어대서 먹지 말라고 혼내고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가더니만은 구해줄 때 까지 파업하겠다고 협박하는 통에 애를 좀 먹었습니다. 앱에서 들어가면 안 되는 구역을 설정하니 그때부터는 이거 왜 지금 들였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이틀 청소시키고 청소 잘 했나 아니면 깨끗해진 것 같은 기분만 드는 것인가 아리송하여 먼지통을 꺼내봤더니 가발 하나 엮을 수 있을 것 같은 머리카락이 가득하더이다. 물걸레도 달려있는 모델인데, 오수통을 비울 때 보면 먼지가 가득합니다. 제미나이, 네가 틀렸다. 로봇 청소기를 사면 인간 노동력 없이 먼지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을 아직 모르는구나. 그래도 바닥에 이것저것 늘어놓으면 청소부쓰레쉬—제 로봇청소기 이름입니다—가 청소하는데 애를 먹기 때문에 그런 것들 다 치워두고 그렇게 부지런해지더라고요. 아무튼 새로운 반려 로봇이랑 잘 지내보겠읍니다. 여러분도 하나 들이세요 최고야
코파일럿을 시작으로 LLM의 코드 출력 성능이 좋아지면서 LLM만으로 코딩하는것을 칭하는 용어까지 유행하더니 일부 코딩 순수주의자들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악셀 팡션? 쓰지 말고 손으로 계산하라는 부장님 보는 것 같아 아이러니가 느껴집니다.
다섯 달 동안 바이브 코딩을 하면서 느낀 점은 생산성 혁신은 실존하는 것이고 그걸 본인의 생산성으로 바꿀 능력이 있는가, 아닌가만 여러분의 결정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코드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프롬프트의 입출력만으로만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었습니다. 이 앱은 저 혼자 쓰기 위한 앱이고, LLM이 없었다면 도저히 들인 노력 대비 얻는 효율이 나오지 않아 코드를 생산할 의지가 전혀 없던 것들이 이제는 효용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앱의 기능 중 하나는 배달의민족 주문 완료 알림을 받으면 그걸 서버에 연결된 스피커로 읽어줍니다. 그게 필요하냐고요? 저한텐 필요합니다. 휴대폰 진동은 느껴지지 않고, 요청사항에 써 둔 '벨 눌러주세요'는 새벽 시간엔 잘 안눌러줍니다. 모든 알림을 소리로 받고싶진 않고, 배달 완료 알림만 소리로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이걸 직접 만든다? 아무리 코딩이 취미여도 효율이 안나옵니다.
업무에서도 사용하고 있는데, 사용자가 적고 조금 못 생겨도 되는 어드민 같은 걸 만듭니다. 어드민은 적은 사용자가 적은 시간동안 사용하지만 없으면 안됩니다. 이걸 장인의 손길로 한땀한땀 만드는 것은 돈이 많이 듭니다. 이런 제품군은 LLM과 제가 반반씩 개입합니다.
그런데 대사용자 앱은 바이브코딩까진 못하고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LLM이 디자인 파일을 완벽한 마크업으로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변경이 생길 때마다 전체 코드를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수정해야하고, 그럴 수 있는 픽셀퍼펙트한 코드를 뽑아내는건 아직 인간입니다. 마크업은 LLM이 추론하게 두는 것 보다 룰베이스로 자동생성하는게 더 좋은 품질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간에 LLM은 그럼에도 충분히 개입하는데, 함수 하나의 인터페이스를 만들면 구현을 추론한다던가, 어떤 변경을 만들면 다른곳에서 '너 이거 여기에 쓸거지?' 하고 제안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기가막힙니다.
또 다른 담론 중 하나는 그래서 LLM이 개발자를 대체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공장형 학원이 생산하는 개발자들은 충분히 위협을 느낄 것 같습니다. 공장형 포트폴리오 수준의 작업물은 바이브 코딩 가능할 뿐더러 인턴 프로젝트 수준을 인턴에게 주는 것 보다 LLM에게 맡기는게 돈이 덜 듭니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도 학원 입장에서도 인턴같은 저연차 개발자를 지금보다 더 큰 수준의 투자로 느끼게 될 것이고 지금같은 저성장 시대에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요.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개발자 평균 연령은 대한민국 평균 연령보다 가파르게 올라갈 것이고, 이대로 한 세대가 은퇴한 시점엔 더 이상 전통적인 개발자는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론 지금 개발자를 생산해내는 시장이 품질은 낮고 양은 많은 기괴한 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힘든 상황속에서 살아남는 양성 시스템을 만든 곳은 학원이든 기업이든 큰 가치를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더운 날은 에어컨을 켜야하나 고민이 될 정도에요. 정말 에어컨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시간이 올 때 까지 산책을 많이 가십시요. 자외선 차단제 듬뿍 바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