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월간 치치

2025.03.30

안녕 여러분. 시간은 또 다시 빠르게 달려 3월의 끝자락. 다들 몸 건강히 지내는지?

요즘에는 프리랜서 일의 긴장이 줄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뭐 먹고 사나 싶은 생각에 다시 다른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밤 늦게 잠들지 못하는 때가 찾아와도 다가올 오늘이 부담스럽지 않아 나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세상이 고장나고있어


수면 시간이 뒤로 밀렸다 앞으로 밀렸다 엉망진창이지만 또 그 불규칙함이 주는 가치가 있습니다. 잠이 들락말락 할 때 쯤에는 영감이 샘솟아 뭐라도 만들고 싶어집니다. 오후에 발견한 멋진 음악, 영화, 글, 인터랙티브 웹사이트, 게임이 생각이 나고 그런 아이디어들이 마구 떠올라 메모 앱을 열어 적었다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떠서 기록했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가. 어떨 땐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들로 무언갈 만들어야겠다, 어떨 땐 정말 쓸데없는 농담들이, 어떨 땐 아무 생각도 안나기도.


저기요. 함수 여러개 한 파일에 담지 마세요. 배송중에 섞이면 어떡해요.


게이밍 키보드와 타이핑 키보드를 전환할 때. 일어나 커피를 사와서 다시 실내용 바지로 갈아입을 때. 선명한 화면과 그걸 덮고있는 매끄러운 유리를 만질 때. 얼음 가득한 컵에 신선한 착즙 오렌지 주스를 따라 마실 때. 전등을 켜지 않은 방에 자연광이 가득 찬걸 볼 때.


제미나이에 인간 노동력 없이 눈에 보이는 먼지를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물으니 그런건 없다네요. 환기도 공기청정기도 내려앉은 먼지를 없애줄 순 없다고. 대청소와 대형 폐기물을 버려야지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는 생각만 3개월 째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길지만 하루는 짧다. 하루가 너무 짧은 것이 억울할 지경이다. 우선은 충분한 잠. 나는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좋다. 잠 자는 시간을 줄이면 깨어있는 시간은 온몸이 쑤시고 뇌는 몽롱해서 깨어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 잠을 충분히 자고 나면 이미 하루의 1/3이 지나있다.

일어난 뒤에는 백수뒹굴을 한다. 부시시한 눈을 괜히 감았다 떴다 하면서 씻기를 미루다가 결심이 되면 나도모르게 갑자기 벌떡 일어나 보일러를 켜고 씻으러 가게 되는 것이 바로 백수뒹굴인 것이다.

오늘의 샤워를 함께 할 15분에서 20분정도 되는 유튜브 재생목록을 만들어두고서는 머리에서부터 뜨거운 물을 맞으며 양치, 샴푸, 바디워시, 클렌징폼 순으로 씻다가 아뿔싸 재생이 샤워 도중에 끝나면 중간에 다시 재생목록을 보충하니 마치고 머리를 말릴 때 까지 30분이 걸리는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집 앞 메가커피에서 메가리카노 두 컵을 사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냉장고 안을 바라보며 '넣은지 오래된 것들을 버려야겠다'고 생각만 한 뒤 커피 한 잔을 넣어두고 한 잔을 들고 일하는 방에 들어와 데스크탑 전원을 켠다.

슬랙을 열어 오늘 할 일을 공유한 뒤 스포티파이를 열어 항상 듣던 3천 곡 짜리 재생목록을 스마트셔플로 틀어두고 네댓시간을 연달아 일하다가 냉장고에서 두번째 메가리카노를 꺼내와서는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할 일 목록에 뭐가 더 있으면 그 꼴을 보는게 내 마음이 불안해져 더 하게 되어버려.

오후 8시가 되면 리그오브레전드를 켜고 나의 친구들이 접속해있나 살피다가 아무도 없으면 또 시무룩해졌다가 그러면 멋진 음악과 영화와 픽션과 웹사이트와 게임을 뒤적거리다가 나의 창작욕이 불타올랐다가 다시 확 꺼졌다가.

집을 점진적으로 청소하고. 아, 집을 점진적으로 청소하는 건 오늘 어지른 세가지 일은 그대로 두고 어제까지 어지러진 네가지 일을 청소하는 것이다. 어지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에서 발견되는 먼지의 많은 비중이 각질과 머리카락인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점진적으로 청소하면 매일 조금씩 깨끗해질 것 같지만 만약 그랬다면 매일이 깨끗한 상태일 것이므로 청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루만 쉬어도 사흘을 더 해야만 겨우 유지된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 뭘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여전히 내가 듣고 보고 읽고 즐길거리가 산처럼 쌓여있고 그런 것들을 쌓이지 않게 즐기기엔 하루가 짧은 것이지.


날씨가 오락가락해요. 무탈하시고 감기 걸리면 약 챙겨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