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월간 치치
나이들어가는게 체감되는 요즘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노화를 느낍니다. 이게 체감이 될 정도로 빠른 영역이었구나… 모기 물린 흔적이 한참이나 남아있고, 아침에 머리를 감지 않아도 큰 불편함이 없고(원래는 아침에 머리를 감아도 오후가 되면 머리가 떡져있었습니다), 머리맡에 머리카락이 몇가닥 새어있고, 없던 알러지가 생기고, 뭐 그런 것들로요.
신체의 변화는 또 있습니다. 이젠 배가 아프지 않습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장이 건강해졌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매운 것과 찬 것을 동시에 때려박으면 상태가 안좋아지는데, 놀랍게도 통증은 과장 조금 보태서 이전의 20% 정도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다른 건강한 사람들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고통을 이해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네요.
여러분 건강 챙기십시오. 비타민과 유산균을 드십시오. 그러나 그 어떤것도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아무것도 안해도 노화가 늦고 건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덧없어질 때가 있지만, 이 모든 멀티버스에서 유산균 챙겨먹는 나는 가장 장이 튼튼한 버전의 나라는 생각을 하면 그래도 계속 그럴 마음이 들더랍니다.
언어는 생각을 가두는 감옥이다.
어떤 것들은 그렇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현재가 지속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누구도 발화하지 않길 빈다. 소리내어 말하는 순간 가속된다.
유튜브와 릴스 댓글을 의식적으로 안 보고 있습니다. (모든 댓글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댓글은 제게 물리화학 공격을 합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두통 비슷한 것으로 즉각적으로 인지합니다. 어떤 댓글들, 그러니까 주로 사고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함이 드러나는 댓글, 이유없이 화가 나있는 댓글, 강아지와 고양이 혹은 남의 자녀에 무책임한 훈수하며 본인의 우월함(실제로도 그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을 은연히 내비치는 댓글들 볼 때면 내 뇌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불쾌감을 느낍니다.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볼 때에도 화면 한 켠에 있는 댓글을 의식적으로 피합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피곤하거든요. 이 생각은 오래되었지만 글로 쓰기까진 오래 걸렸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혐오감이기 때문입니다. 혐오를 혐오하는 것도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하기 때문입니다.
읽을거리를 찾다가 링크드인에 접속했다. 페이스북에는 '추천' 달린 게 웬 외부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광고로 범벅된 클릭베이트밖에 없어서 들어갔다가 껐다. 링크드인은 적어도 그런 클릭베이트는 없지만 마케팅 도구로의 역할은 페이스북보다 더 하면 했지 덜 하진 않다고 느꼈다. 링크드인의 글들은 '내가 뭘 이뤘냐면, 내가 얼마나 열정이 넘치냐면, 내가 어떤 성장을 추구하냐면, 내가 알아낸 통찰은'이 전부—적어도 내 계정에 나오는 건—다. 글의 내용이 뭐든 결국에는 퍼스널 브랜딩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가끔은 마케팅 의도가 우선된 게 아닌 진심이 담긴 진짜 글이 있긴 하다. 문제는 그런 진짜 글은 마케팅 측면에서는 낙제라는 거지만. 그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는 사람들은 그런 것은 온라인에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안 팔릴 이유를 가린 것은 잘 팔릴지언정 정이 가지는 않아. 나는 진짜 글들이 좋다.
가끔 갑자기 멜로디가 생각나는 전자음악이 있다. 그런데 전자음악이라는 것이 가사가 있는 것도 있지만 가사가 없는 것이 많아서 이게 무슨 곡이었나를 생각해보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게 강박을 만든다.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가사가 없으면 검색을 할 수도 없다. '위융위융위융 이 이 이 이' 이걸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내 음악 라이브러리를 30분 동안 뒤적이다가 결국에는 말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아는 곡인데. 세부적인 것 까지 기억나는데 곡명이 뭔지 모르는 다른 경우도 있다. 보통은 앨범 채로, 확장하면 아티스트 채로 들으니까 이건 이디오테입이네 이건 저스티스 신보네 이건 데드마우스 이건 100년이 지나도 스크릴렉스 그런 것은 알지만 이 곡 이름이 뭐냐 그러면 그건 모르겠고 아티스트와 앨범은 알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운드 디자인이나 구성에 집중하면 이런 기억은 살아서 돌아오기 마련이다. 금방 찾아낼 수 있다.
그러고보면 기억이라는게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어쩌면 기억이라는 건 허상이고 추론하는 회로만 남아 특정 회로에 전압이 걸리는 순간 기억을 만들어 내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분명 얼굴도 목소리도 떠오르는데 저 사람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특이하게도 동료였다가 이직을 한 사람의 경우에는 닉네임은 기억나지 않고 본명만을 기억하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내가 퇴사를 하니 대부분의 이름이 본명으로 기억됐다. 그러니까 기억이라는 게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에서 어떤 파일을 탐색하는 게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그때 그때 만들어내는 게 아닐런지 하는 상상. 뇌 용량 한계 상 필요없는 회로는 지워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회로를 덮어버리는 상상. 이런 건 논문 찾아보면 나오겠지. 그런데 위융위융에서 시작해서 뇌과학으로 흘러가는 사고흐름이 재밌어서 실제로 뇌가 기억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고싶은 욕망이 크지는 않다.
무슨 모기가 9월 말까지 나를 괴롭히나요. 모기 미워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