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월간 치치

2024.07.15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 벌써 7월의 한 가운데. 너무 더워 산책을 여러번 포기하는 요즘입니다. 요즘엔 한 문단 짜리 짧은 픽션을 쓰고 있습니다. 더 긴 픽션을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우주가 나를 위해 준비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십니까?

처음 그런 생각을 한 날은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본 날. 나의 경험을 타인과 천천히 교환하는 데 익숙해질 때쯤 공개된 시리즈를 보면서 했습니다. 시리즈의 묘사가 나의 불안과 우울의 감정과 경험을 놀랍게도 닮아있어서 이 시기에 이 시리즈가 공개된 것이 전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경험을 타인과 교환한 일이 시기상으로 먼저인 것이 다행스러웠고요. 만약 시기가 반대였다면 누군가 내가 시리즈 따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때 무어라 답했을지를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데미안을 읽었을 때입니다. 아마 내가 이전에 나의 불안과 우울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나는 상담을 시작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나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데미안을 읽어도 지금의 감상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우주가 나를 위해 준비한 순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팬레터를 받았습니다. 나의 글을 잘 읽었다는 이메일을, 그러니까 진짜 팬레터를 받았습니다. 얼마 후에 나이트오프ㄴㅈㅊㅁㄱ이 발매되었는데 그 가사가 그 이메일과 닮아있었습니다.

전혀 별개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느껴질 때면 '어라라 우주가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주가 나를 위해 준비되었다는 말을 좀 더 낭만 없고 현실적으로 바꿔보면 '나는 아종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지요. 그러니까 저는 보편적인 일에서 특별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마저도 우주가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낍니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이런 일들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설명을 붙입니다: '우주가 나를 위해 준비되었다는 생각'은 비유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니까 이 문단은 제가 무속적인 것에 의존하거나 나르시시즘에 잠겼거나 어떤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사람들은 코드가 컴퓨터를 위한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코드는 코드를 읽을 사람을 위해 쓴다. 우리의 글과 같다. 우리는 언어를 공유하지만 진심을 공유하는 건 순간일 뿐이다. 코드와 같다.


나는 나비가 싫어. 그 애가 말했다.

나비 귀엽지 않아? 내가 말했다.

그 애는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비와 얼굴을 마주한 적 있니? 그 애가 나를 떠났다.


날이 더워요. 자외선차단제 잘 챙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