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2024.07.22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나는 아주 오래 나 스스로를 잘 안다고 착각했지만 결국 불안과 우울이 찾아왔고 마침내 나는 나를 잘 모른다고 인정했다. 나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해. 나는 데드풀이 농담을 할 때면 즐거워. 나는 설거지를 사흘이나 미루곤 해. 나는 요아소비빠따정을 한 달에 한 번은 먹어. 나는… 나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나의 파편들이지만 나를 아주 잘 아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 많은 것은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어떤 것은 다른 것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고 어떤 것은 오늘까진 나의 파편이지만 내일이면 더 이상 나의 파편조차 아니게 된다. 지금의 내 생각은 일 년이 지나면 더 이상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내 생각을 글로 쓸 때면 항상 그런 점이 묘하게 걱정된다. 오래 전의 내 생각을 여전히 나라고 오해하면 어쩌지. 하고.

물론 고정된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나는 개인주의 성향이 짙고 개인주의자를 대할 때 편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래도 바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자는 타인을 독립 개체로 본다. 사람을 범주화할 순 있어도 가치 판단에 큰 비중을 두진 않는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서울시민이라서, MBTI가 INFX라서, 윈도우와 안드로이드 사용자라서, 게이머여서, 엄마의 아들이라서, 누군가의 연인이어서 등 수많은 이유로 타인이 원하는 나를 살지 않을 것이고, 나도 타인에게 내가 원하는 타인이 되어달라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서로를 알고자 해도 서로의 파편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아직 어색한 사이일 때 너 MBTI 뭐냐고 묻는 게 이미 국룰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쉽게 범주화하면서 서로를 잘 알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안다는 기분만을 가진다. 애초에 서로를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일평생을 알아온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잘 알면서 동시에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타인을 더 잘 알기 위한 마음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인류애가 되었든 좋은 친구처럼 느껴져서든 아니면 부모와 자녀 혹은 인생의 반려자 같은 마음에서. 다정한 마음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서로를 안다는 착각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 너는 포도를 좋아하니까. 어느 가족은 가족이 아니니까. 괴물은 돼지의 뇌를 가졌으니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에 대해 다정해야 한다. 서로를 성급히 판단하고 정의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을 아는 것은 애정을 갖고 서로를 발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