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25.11.23

응우옌은 호치민시 근교 대학 2학년 학기중에 휴학하고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일했다. 본래 학자금 대출을 조금씩 갚아나갈 심산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700만동 남짓한 월급은 월세 내고, 오토바이 기름 넣고, 밥 사먹으면 겨우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을 정도였다. 이래서는 8년을 일해야 학자금을 갚을 수 있었다. 그래도 푹 찌는 여름 더위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데다 관광객이 5만 동 정도 팁을 주는 날이면 이렇게 수도에 살고있는 자신의 처지가 고향 친구들에 비하면 좋다고 생각했다. 푸드코드의 손님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는데 식사가 끝난 자리만 봐도 어떤 나라에서 온 손님인지 알 수 있었다. 반납하지 않은 빈 식기가 덩그러니 남은 자리는 십중팔구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그걸 치우는 것은 한국인 관광객의 식기를 정리하는 것 보다는 할 만 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걸신들린 듯 과한 식사를 주문하고는 식사의 반을 남겼다. 그 때문에 푸드코드의 음식물 쓰레기를 하루에도 대여섯번 백화점 외부의 쓰레기장에 옮겨 버려야했다. 응우옌은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을 자신이 일하는 푸드코트가 아닌 백화점 밖 3분 거리의 쌀국수 노점에서 해결하면서 문득 한국인들은 돈이 얼마나 많으면 식사 아까운 줄 모르고 항상 남기는지 궁금했다. 식사를 마치고 복귀한 응우옌은 백화점 와이파이에 연결해서 구글 AI 모드에 한국인 월급을 검색했다. 한국의 최저시급은 10,030원, 월급을 베트남 동으로 환산하면 3,770만 동. 그들은 내 하루를 1시간 30분에 살 수 있었다.

그게 응우옌이 서울행 비행기를 탄 이유다. 브로커에게 선금으로 2500만 동을 주고 앞으로 벌어들일 급여의 30%를 1년간 지불하는 조건이었지만 한국에서 일하면 금방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로커는 나를 서울의 어학연수원에 등록했다. 취업비자 없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6개월이 지나야 한다고 했다. 6개월간은 브로커의 휴대폰으로 배달 일을 하기로 했다. 브로커에게 오토바이 비용을 또 내야 했지만 브로커가 제공한 숙소에 머물 수 있는 점을 생각하면 빚 지는 일은 아니었다. 호치민보다 빠르게 달리는 서울의 오토바이만큼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서울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 달 부터는 숙소 월세를 내야했다. 숙소가 한 달에 30만 원, 식비로 30만 원. 어학연수생에게 허용된 근무시간은 주당 최대 30시간. 호치민에서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았다. 부모님에게 송금할 때에는 브로커가 수수료로 15%를 가져갔다. 어느새 겨울이 왔다. 서울의 차가운 공기가 응우옌의 폐에 스며들었다. 푹 찌는 호치민의 여름이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