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동 굿 할머니

2019.10.09

굿 할머니를 처음 본 건 한달 전 쯤. 회사 건물 옆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얼굴만한 썬글라스를 끼고 작은 핸드백을 산타 주머니처럼 어깨 위로 들쳐 메고 있었다.

그녀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강렬한 아웃핏만은 아니었다. 허공을 바라보며 "굿~!" 을 외치는가 하면, 세 걸음 채 안 가 호탕하게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한참을 걸은 뒤 다시 뒤를 돌아 '굿~!'을 외치거나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보아 목적지가 있어 걷는 게 아니라 그냥 걷기 위해 걷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녀를 논현동 굿 할머니로 칭한다. 그녀의 강렬한 인상은 내 머릿속을 한동안 맴돌았고, 그 강렬한 인상에서 시작된 단편 두 편을 썼다. 원랜 대여섯 편을 엮은 옴니버스를 꿈꿨는데 두 편 쓰고나니 창작욕이 바닥을 기었기 때문에 두 편만 공개한다.

인생

그녀는 1952년 경기도 양주에서 났다. 삼대독자 집 며느리가 애를 뱄단 소식에 온 집안이 지극정성이었지만, 결국 고추 없이 태어난 그녀는 첫 돌을 맞는 날 서양의 이름 모를 도시로 입양 갈 예정이었다. 그 일주일 전 으슥한 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 품에 안겨 상경했다.

매일 학교가 끝난 뒤, 두 모녀 몸 뉘이면 숨 쉴 공기가 모자란 관짝같은 집을 향해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 마다 그녀는 이름 모를 도시에서 마당 잔디에 누워 금발의 양어머니가 동화책 읽어주는 상상을 했다. 문득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대문 앞에서 서너시간이나 목 빠져라 어머니를 기다리며 배 곯을 땐 그렇게도 원망스러운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제 앞가림 하기 바빠서 이미 1년 전 그저 그런 남자와 살림을 차려 연이 끊기게 된 어머니에 신경 기울일 새가 없었다. 참관수업 날 아무도 저를 보러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누군가의 부모가 제 자식 보러 상기된 얼굴로 교실 문을 열 때면 힐끔힐끔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곤 그런 자신에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라고 보챘다.

성인이 된 그녀는 5일장에서 과일을 팔았다. 동이 트기 전 일어나 한밤중에 잠들었다. 쌈짓돈은 장판 밑을 가득 메웠고, 일한지 10년 되는 날, 그녀는 직원 30명을 부리게 되었다. 마침내 한강이 보이는 빌라로 이사하는 날, 그녀는 날 때 받은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지었다.

그녀는 스스로 성공한 자신이 대견했다. 빌라를 지어 올린 건설사 대표가 횡령으로 징역을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미 집 값은 대여섯 배로 올랐기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작은 화재가 빌라를 집어삼켜 키우던 개가 타죽었을 때, 다시 언덕을 올라 관짝만한 집으로 들어갈 때, 새벽까지 흐느끼며 잠 못들 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증오했다.

독일제 침대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가게를 청소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제 인생이 불쌍할 때면 편의점에 들어가 복권 오천원 어치를 사곤 싸구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을 수 있는 순간들을 회상했고 그 끝은 언제나 첫 돌 일주일 전이었다.

일년 쯤 의미없는 생활을 반복했을 때 그녀는 인생에서 본 적 없는 희열을 맛 봤다. 로또 1등. 제 눈이 드디어 망가졌나보다 생각하곤 다시 확인해도 맞았다. 1등.

그녀는 원망스러웠다. 이러려고 제가 한평생 고생했구나. 이럴 거면 고생과 보상 모두 없는 게 나았을 걸. 그래도 은행에서 당첨금을 지급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새어나는 웃음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그녀는 본인의 인생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냥 그거면 됐다.


발전

그들이 지구에 도착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51구역, 미스테리 서클, 피라미드, 마야, 달 착륙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은신에 능하다. 서울 상공에 그들의 배가 수십 척 나타나도 20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존한다.

그들의 사고는 우리와 달라서 직관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글을 읽기로 결정했다면,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에너지다. 그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왔다. 효율이 가장 좋은 건 부정적인 에너지다. 제대로 된 설계만 있다면 쉽게 전염시킬 수 있다. 원자력보다 효율 좋은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그들은 흑사병을 만들었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 탓 할 대상을 찾았고 우리 중 가장 약한 것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부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분출했다.

큰 성공을 거둔 그들은 천연두를 만드는 데 이른다. 흑사병과 천연두의 연이은 성공으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수확했지만, 많은 사람이 죽어 다음 에너지를 수확할 때 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간성은 심오하고 복합적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망가트리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곤, 완전히 망가져 되돌릴 수 없게 되기 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해 스스로를 고친다. 그들은 흑사병과 천연두 사례에서 이 점을 배웠다.

그래서 그들은 큰 전쟁을 두 번이나 만들었다. 우리 중 반을 죽인 전염병과 비교해 전염성과 에너지 양은 비슷하면서도 사망자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의도대로 증오, 혐오, 분노, 슬픔, 공포를 한껏 발산했다. 그러곤 완전히 망가져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머지 않았다고 느낄 때 쯤, 우리는 희망, 사랑, 기쁨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그들의 입장에선 잃을 것이 없는 완벽한 설계였다. 우리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쥐어 짜낸다음, 긍정적인 에너지를 쥐어 짜냈다. 그들은 안정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수확하게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이길 방법이 없다. 우리는 평생을, 자손이 자손을 낳고 그 자손이 자손을 낳을 때 까지 그들에게 수확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과 공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들은 우리를 통제해 에너지를 얻었고 우리는 통제받으며 우리 스스로를 해쳤다. 그렇기에 나는 제안한다. 소, 양, 개가 스스로 우리 인간의 소, 양, 개가 되기로 결심한 것 처럼 우리도 스스로 그들의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해낸다면 그들은 억지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쥐어짜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고통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우리가 서로를 해치며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