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과 우울
누구나 저마다의 고단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 경우엔 다른 사람의 경험을 아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처럼 전이가 쉽게 되는 분들은 글을 읽는 데 주의해주세요. 여러분, 저는 괜찮습니다. 분명히 나아질 것입니다.
일곱 달 전,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시야가 흐려지고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손과 발이 떨려 서 있을 수 없는 경험을 두어번 했습니다. 많이 피곤한가보다 생각했어요.
여섯 달 전, 어떤 것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게임도, 음악도, 영화도, 쇼츠도, 릴스도, 식사도, 일어나 양치하는 것도, 커피를 마시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방에 불을 켜는 것도, 끄는 것도, 어떠한 사고도, 어떠한 유희도, 어떠한 생산도 하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이전의 나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동료가 제 의지를 탓할 때에는 더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변명하거나 설명하는 일도 하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흔히 하는(받는) 오해 중 하나는 인간사 크게 다를 것 없는데, 유독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유독 힘든 상황을 견디기 괴로워 하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이 아닌 전혀 다른 접근을 해야 우울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섯 달 전, 어떤 불안과 우울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저 일어나고 출근해서 웃으려하는 데 온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아서 7시가 되면 퇴근을 하고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잠들었습니다. 이 디코이는 꽤나 잘 먹혀서 제 상태가 괜찮은 줄 알고 제게 온갖 피드백을 하거나, 제가 우울증을 고백하면 전혀 그런 줄 몰랐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사실 그런 반응들을 의도했습니다. 저는 전이가 쉬운 사람이라 혹시 어딘가에 있을 저처럼 전이가 쉬운 사람이 영향받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네 달 전, 꽤나 잘 맞는 약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내성과 부작용으로 다른 약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우울불안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우울불안장애 그 자체보다는 부작용에 더 쉽게 공감합니다. 한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거나, 멍하고 졸리거나, 구역감이 있거나, 어지럽거나 하는 것들이요. 하지만 제겐 이런 부작용들은 우울불안을 완화하는 주작용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것들이라서 부작용이 힘들진 않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현대의학 최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여러 약을 시험하고 부작용을 없애는 과정들을 진행중입니다.
드리고 싶은 말
누구에게나 불안과 우울은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아래 간이 검사의 점수가 21점 이상이라면 전문가에게 도움 받는 것을 고려해주세요.
전혀 그렇지 않다 - 0점
가끔 그렇다 - 1점
자주 그렇다 - 2점
항상 그렇다 - 3점
- 나는 슬프고 기분이 울적하다.
- 나의 외모는 추하다고 생각한다.
- 나 자신이 무가치한 실패자라고 생각된다.
-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열등하고 뭔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 나는 매사에 나 자신을 비판하고 자책한다.
- 나의 앞날엔 희망이 없다고 느껴진다.
- 어떤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어렵다.
- 나는 쉽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 진로, 취미, 가족, 친구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 어떤 일에 나 자신을 억지로 내몰지 않으면 일을 하기가 어렵다.
- 인생은 살 가치가 없으며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 식욕이 없거나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
- 불면으로 고생하며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피곤하여 너무 많이 잔다.
- 나의 건강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 성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11점 이상: 정상이지만, 가벼운 우울 상태에요. 기분을 새롭게 전환할 노력이 필요해요.
21점 이상: 무시하기 힘든 우울 상태에요. 이런 상태가 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31점 이상: 심한 우울 상태에요. 가능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도움을 요청하기
제가 가장 힘들었던 5개월 전엔 간이검사 점수가 37점이 나왔습니다. 저는 제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전문가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으려는 의지를 가지세요. 이 증상에 대해 얘기할 사람을 찾으세요. 우울이나 불안장애를 먼저 겪어본 친밀감 있는 편안한 사람이면 좋습니다. 최대한 정중하고 드라이하게, 증상을 설명하고 어떤 전문가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세요. 먼저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마세요. 상대방을 존중해주세요. 우울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를 경험하지 않은 비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얘기할 사람이 없다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제 연락처를 아시면 바로 연락 주셔도 좋고, chichi@chichi.space 로 메일 주셔도 좋습니다. 바로 전문가에게 얘기하셔도 좋습니다. 상담사나 의사를 찾으세요.
도움을 주기
만약 우울불안장애를 겪은 적이 없으시면, 제 경우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지해주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저 잠깐의 포옹을 해주세요. 상담사와 의사를 알아보고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