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세계

2021.06.14

친구의 친구들과 여행을 갔어요. 놀러간 펜션엔 술과 맛있는 음식이 잔뜩 있었습니다. 그 펜션은 구조가 어딘가 이상했는데, 화장실을 전부 덮는 평상을 깔고 그 위에서 쉴 수 있는 구조였어요. 아니, 화장실 위에 있는 한 겹의 천장을 내리면 그 화장실이 방으로 변한다고 하는게 더 정확하겠네요.

그 구조를 어떻게 알았냐면, 분명히 화장실이었는데 다음에 다시 찾아갔을 땐 침구가 깔린 방이 되어있었답니다. 바닥은 높아져 있었고요. 아! 제가 화장실을 찾아간 이유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이 왁자지껄한 와중에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꿈을 꿨는데... 오줌을 싸는 꿈이었어요. 오줌을 싸는 순간 꿈에서 깼는데 누운 자리가 축축하더라고요. 다행히 오줌이 아니라 땀에 젖어있던 거더라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더운 날인데다 창가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땀으로 축축해진 바지를 갈아입고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정말로 땀에 젖은거에요.)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화장실에 간 거였답니다. 이상하게 오줌 싸는 꿈에서 깨면 현실에서도 배뇨감이 장난 아니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다시 화장실을 찾았을 땐 변기는 온데간데 없고 높아진 바닥엔 이불이 깔려있었어요.

그렇게 황당해하고 있자니 별안간 누군가 라이터를 찾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따라 나갔어요. 담배를 피우고 싶기도 했고 여차하면 노상방뇨를 할 심산으로요.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 새로 사귄 친구들 세 명과 함께 펜션 뒷문으로 나섰어요. 마당엔 잎이 마른 잔디가 깔려있었고, 쏟아지는 여름 햇살이 기분 좋았어요. 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어디에서 담배를 피울지 고민하다가 동네 구경도 할 겸 아예 대문 밖으로 나섰어요. 한 2분 정도 걸으니 흡연구역이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담배를 피우면서 상점들을 둘러봤어요.

놀이동산에서 볼법한 재밌는 음료자판기나 인형뽑기 기계 따위가 모여있는 무인 매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가장 눈에 띈 건 음료자판기였어요. 차가운 커피 슬러쉬 단일메뉴를 팔았는데 그 제조과정이 투명창을 통해 다 보였어요. 윌리 웡카가 커피 슬러쉬 자판기를 만들면 딱 그런 모양일 거에요. 그 음료를 너무나 마시고 싶었는데 못 마셨어요. 제가 그 자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니 미화원 할머니가 그 기계는 고장났다고 알려줬거든요.

저는 더이상 쉬를 참을 수 없어서 노상방뇨를 하려고 했어요. 펜션이 있는 동네는 어느정도 발전했지만 여기저기 풀숲과 공터가 있어서 거기에 해결해야지 했죠.

적절한 위치를 찾아 쉬를 하는데 이게 웬 걸,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구나. 현실의 나는 이불에 지도를 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불안해졌기 때문에 꿈에서 깨려고 했어요.

그 때 친구들이 제게 달려오며 뭐라고 소리치더라고요. 그 친구들 세 명 모두 여자였기 때문에 저는 몸을 돌려 쉬하는걸 가리고 고개만 뒤로 돌려서 왜? 뭐? 하고 소리쳤어요. 그러다 꿈에서 깼는데 마음이 싱숭생숭 하더라고요. 저는 그 꿈에서 친밀감과 안정감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눈을 감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그 친구들을 생각했어요. 세 명 모두 제가 현실에서 아는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화장실에 가서 쉬를 했습니다. 이불에 실수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고, 잠들기 전에 쉬를 했다면 그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웠습니다.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느새 다시 제 방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배뇨감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또 다시 꿈이었죠. 이제 정말 이불에 지도를 그릴 것 같아 깨야만 한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후 제 방에서 깨어나 화장실에 가는 꿈만 서너번 반복했습니다. 미묘하게 다른 가구 위치나 엉뚱한 변기의 각도를 보고 또 꿈이라는걸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고 현실에서 이불에 실수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곤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꿈을 꿨다는 사실을 알아챘어요. 꿈 속 친구들과의 친밀감은 저 편으로 흐릿해진 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