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0

2024.03.23

머리카락을 자를 때가 되었다. 꽤나 내 머리를 만져준 미용사 선생님이 강남에서 도봉으로 일터를 옮겼다. 나는 선생님의 실력에 매료되기도 했거니와 다른 미용실에 가서 내 요구를 낱낱히 설명할 자신도 없었기에 편도 한시간 반에 이르는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반년 전의 나는 택시를 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대중교통을 탈 마음의 여유도, 신체적 에너지도 차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3100번 버스는 크게 세가지 구간을 운행한다. 강남구를, 중랑천을 따라 동부간선도로를, 태릉입구부터 경기북부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버스가 강남구를 가로지른다. 차가 이리저리 뒤섞여 경적을 울리고 사람들은 바삐 움직인다.

버스가 신사를 지나 한강으로, 한강에서 중랑천으로 나아갈 때엔 아주 낯선 감정이 들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순간을 즐겼다.

주말 낮, 중랑천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풋살을 하는 청년들, 게이트 볼을 치는 노인들, 중학생 쯤 되어보이는 무리는 농구를 하고,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자전거를 밀어준다. 하천변을 뛰어다니는 사람들, 천천히 걸으며 봄바람을 즐기는 연인들과 낯선 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여전히 버스 안에 있지만 그 모든 순간들에 그들과 함께했다. 낯선 행복감이 나를 채웠다. 내가 평소 알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종류였다. 중랑천에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 서울은 다 똑같은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저 테헤란로 한 조각만을 살았구나.

버스는 노원구 시내로 들어선다. 버스에 앉아 하늘이 보일만큼 얕고 넓게 펼쳐진 건물들 사이사이엔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어다닌다. 창 밖을 보고있자니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도 나는 새로운 미용실을 찾지 않을 것이다. 3100번 버스를 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