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조각 모음

작년 말 즈음해선 ‘나 지금 울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울지 않지? 내가 성장한 것인가? 아니면 우는 법을 잊은 건가?’ 하고 혼란스러웠다. 최근 유튜브에서 오은영 박사님의 TV 출연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늦은 새벽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나 울 수 있네’ 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더랬지. 오은영 박사님을 모르는 분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육아 관련 방송도 하신다.

혹시나 오해할까 노파심에 적자면 나는 가족관계에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육아 방송을 보며 공감과 위로를 받고 눈물이 난 이유를 생각해보면, 성인의 시각으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어린 아이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간파하고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는지.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 하는 박사님의 모습이 왠지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이해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박사님의 표정과 말에는 사랑이 있었다.


나이를 점점 먹어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모르겠지만.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느낌의 “연애 안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면 “그래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 같은 느낌의 “연애 생각 없어요”를 답한다.

그러면 가끔 “그래 이번 주 금요일 시간 괜찮아?” 같은 느낌의 “왜 생각이 없어?”, “언제가 마지막 연애야?”, “소개팅 할래?”를 질문 받는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연애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고, 그런 것이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했을 때 “그런 사람이 어딨어?” 혹은 “너 그러면 연애 못 해” 같은 타박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가 진짜 밥을 먹자는 의미가 아니듯, “연애 안 하냐”는 질문이 진짜 내 사생활이 궁금하여 물은 것이 아닌 것이 첫 번째 이유, 내 취향을 공격받고 싶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이유, 내 온전한 사적 영역에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세 번째 이유.


마음이 좋으면서도 좋지 못할 때 모임 별의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음반을 듣는다.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너와 나 사이의 이 푸른 빛이 그래도 역시 나는 말을 하지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언제까지나.

(푸른 전구 빛)

우리는 벌레들 우리는, 우린 벌레들이니까 벌레춤. 벌레들이니까

(벌레춤)

우리 모두 함께라면 영원히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던 그 시간들 이후 우린 흩어져 버렸지 그 때 모두 함께 본 것들 너도 기억하고 있니 지금도

(태평양)

우리는 봐줄만한 실패작 어딘가 모자라는 성공작 하지만 우리 둘이 함께면 아무 의미 없어

(둘)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복잡한 감정이 들 때면 이 음반이 생각난다.

영원할 수 없고, 보잘 것 없고, 흩어져 버렸고, 봐줄만 하지만 어딘가 모자라면서도 동시에 언제까지나, 춤을,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함께라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의 소용돌이.


스스로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징그럽고. 대견하면서도 창피하고. 잘 하는 것 같으면서도 왜 이렇게 사나 싶다.

만사에서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질 먼저 찾는다. 스스로 사랑하기란 타인을 사랑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것.


0
👍
0
❤️
0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