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

에너지 발산과 전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글을 통해 생각을 드러냈지만, 이 글은 온전히 발산과 생각의 전염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면 되도록이면 이 글을 읽지 말아라. 이 글을 읽는다면 내 생각—주로 부정적인—에 오염될 수 있다.

카페에서 컵을 넘어뜨려 물을 쏟은 적 있다. 옆 사람의 책이 젖었고, 내 잘못이 분명한 일이다. 나는 그 즉시 가장 효율적으로 휴지를 가져올 수 있는 동선을 생각했고 실행했다. 휴지로 책을 닦으며 작게 ‘죄송합니다’ 말했고, 그 사람은 ‘미안하다고 안 하세요?’ 말했다. 나는 ‘아.. 미안하다고 했는데 못 들으셨어요? 죄송합니다.’ 했고 그 사람은 언짢은 표정으로 책을 닦았다. 내 모든 말과 행동이 엉망이었다.

언젠가 퉁명스럽게 사과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적잖히 놀랐다. 맹세코 내 사과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걸 몰랐다. 허공에 대고 육성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연습을 했다. 내 기억 속 온갖 잘못을 끄집어내서 이 땐 이렇게 했어야 했다며 듣는 이 없는 사과를 반복했다. 이미 엎어진 물이다.

내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흡수하는건 아무래도 괜찮은 일이다. 나는 그런 에너지들을 흡수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염시키고 싶으니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기꺼이 중재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 부정적인 에너지 발산의 원인이 나 때문이라면 그게 못 견디게 힘들다. 내 문제는, 미안한 일을 미안하다고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잘못이라고 인지가 되면, 그게 미치도록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정작 대상에게 사과하질 못하는 것이다.


카카오는 생각이 전염될 수 있는 창구를 닫았다. 연예뉴스 댓글 서비스를 종료하고, 인물 연관 검색어를 없애고,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 개편을 발표했다. 이미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후였다.

아무리 중요하고 긍정적인 일이어도 여론이 필요하다. 카카오와 VCNC가 대중의 눈치를 보고, 여론을 움직이는 데 힘을 쏟아붓는다. 생각을 전염시키는 건 주로 부정적인 사건이다. 강렬한 부정적인 에너지가 발산되면 여론이 바뀐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카카오의 결정이 좋은 것이라고 판단 할 수 있었을까? 그 일이 없었다면 카카오의 결정에 지지를 보낼 수 있었을까? 슬픈 일이다.

친구의 생명이 꺼질 뻔 했다. 나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친구가 삶을 포기하기 위해 행한 것들을 덤덤히 말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잠자코 들으며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함께 게임을 할 때면 친구는 게임에만 집중했다. 게임하다 지쳐 또 다시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할 틈 없이 무사히 잠들길 바라며 함께 게임을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다른 일을 제쳐두고 늦은 밤까지 함께 게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이 되면 농담을 받을 때마다 버거웠다. 펑소였으면 장단 맞췄을텐데. 나를 좋아해서 하는 농담인 것을 알면서도 장단을 맞추기 힘들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뒀으면 좋겠어. 어떤 에너지도 발산하고 싶지 않다. 내가 다시 진심을 다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 때 까지 나를 내버렸으면 좋겠어.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땐 어떻게 해야할까. 생명이 꺼져가는걸 볼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으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는건 힘든 일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방출하는 게 좋은 일인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좋은 일을 행할 때, 혹은 누군가 좋은 일을 행한 것을 볼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은가.

토마스가 거하게 취해선, 나랑 얘기중이던 사람에게 ‘치치랑 말이 통한다는 건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라 했다. 그냥 시시콜콜한 음악 얘기 했을 뿐인데. 그 이후로 거의 사랑고백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지만 내가 더 민망하기 때문에 밝히진 않겠다. 낯 뜨거운 칭찬으로 나를 민망하게 한 토마스에게 감사인사 하고싶다. 토마스도 좋은 사람이에요. 내 안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무너트리는 데엔 따뜻한 말 한마디 듣는걸로 충분하다.

2019년 10월 26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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