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떠나보내며

참 감성이 풍부한 친구였다. 아니 사실은 그 아이만의 감성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그렇다더라.

내가 너를 만났던 이유는 네가 참 컸기 때문이지. 아, 화면크기 말이다.

그 전에는 6인치 윈도우폰을 썼었다. 잘 하는 것 하나 없는 아이였지만 모든 게 용서됐다. 내가 창문충인 이유도 있겠지만 주머니속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을만큼 큰 것이 모든걸 용서했다. 아, 화면크기 말이다.

이후엔 갤럭시s6를 썼다. 6인치 화면을 보다가 그 작은 화면을 보니 네가 뭘 해도 답답했다. 분명 윈도우폰보다 하는 것 많은 아이였는데 참으로 이상하지. 역시 크고 봐야해. 아, 화면크기 말이다.

그 작은 화면에 고통받을 때 아이폰7플러스를 만났다. 옛 친구에 비하면 새 친구는 정말 컸다. 아, 화면크기 말이다.

그런데 있지, 분명 윈도우폰보다 할 줄 아는 것 많은 아칠플이지만 갤럭시s6보다는 뭔가 부족했다. 살아보니 큰 것 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긴 하더라. 아, 자율성 말이다.

돌이켜보면 아이폰 감-성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겠다.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제품을 내놓을 때 디테일보다 기능적인 부분을 빠르게 구현하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자면 햄버거 메뉴를 클릭했을 때 세개의 작대기가 회전하며 X 모양으로 바뀌는 애니메이션을 넣는 것은 사치란 말이지.

애니메이션을 넣더라도 리니어로 동작하느냐 더 섬세한 그래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그렇다. 애니메이션보다는 햄버거 메뉴가 동작하는 게 우선순위다. 그런데 아이폰은 디테일이 훌륭하다. 애니메이션이 실행될 때 리니어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더 복잡한 그래프를 갖고있다.

장점이 없는 아이는 아니다. 중첩된 상태를 오고가는 제스처가 상당히 직관적이고 편하다. 화면도 ips 패널이라 좋다. 아무리 oled 디스플레이가 좋다 좋다 해도 화면이 물리적으로 타는 걸 막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또 뭐 있나? 음.. 생전 관심도 없던 짝궁 장점 5개를 적어내는 숙제를 하는 것 같다.

몇가지 빼어난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기능적인 면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디테일일 뿐이다.

아이폰은 교통카드가 안 된다. 그 전 친구는 교통카드를 나 대신 들고 다녔다. 교통카드 한 장 들고다니는 게 그리 대수냐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 효용은 훨씬 크다. 버스가 정류장에 근접하면 내 손에는 아이폰과 교통카드가 들려있다. 손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 상태에서 다음 곡으로 넘기는 일은 귀찮지 않을 수 없다. 탑승시간이 적은 마을버스를 탈 땐 카드를 계속 쥐고 있어야 한다. 카드를 잠깐 쥐는 것은 힘들지 않지만 하차할 때 까지 폰과 카드를 함께 쥐고 있는 것은 여간 고역이다.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그 전 친구는 체크카드도 대신 들고 다녔다. 써봐야 편한 것을 안다.

아이폰의 폐쇄성은 모바일 디바이스를 대체제에서 보완재로 전락시킨다. 갤럭시 친구와 함께할 때 랩탑을 켜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 아이폰에서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아이폰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불편함에 점점 순응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다른 친구였으면 뭔가를 할텐데, 아이폰과 함께일 땐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니 익숙해진다.

그런 이유들로 나는 너를 떠나보낸다. 단말 할부금 60만원이 남아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너보다 더 큰 친구를 만날테니까. 아, 화면크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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