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TV를 봤다. 보고싶은 것을 내가 찾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보여주는 것을 보는 경험이 새삼 낯설고 괜찮았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인기있는 모 드라마가 흘러나왔는데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에게 본관을 묻는 장면이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저 드라마의 팬이 "세상이 유치하니까 드라마도 유치한거겠지" 하곤 법정 드라마의 언리얼함을 에둘러 변호하는 장면이 머리속에 펼쳐지고 피곤해졌다.

    요즘 시대에 전주 이씨, 밀양 박씨가 대체 무슨 영향력이 있는지 공감 안 되었더랬다. 차라리 네이버 세모, 카카오 네모, 쿠팡 레오가 요즘 성씨를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듄의 아트레이데스, 하코넨처럼 행성 규모를 지배하는 가문이 아니고서야 적이 같다고 공동체 의식이 생길 수가 있나? 팔촌은 고사하고 사촌지간이 뭘 하고 사는지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요즘 것들의 소속감은 차라리 취미 동아리로 생긴다.

    2022.07.23
  2. 따뜻한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에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영화가 무엇이 있는지 왓챠피디아에 들어가 평가한 영화를 별점순으로 들여다봤다. 이게 웬 걸 목록을 밑으로 한참 내려도 따듯한 영화가 나오질 않네? 좀 놀랐다. 과학영화를 제외하면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영화들이 줄지어있다. 로건이 보여준 사랑은 로건의 죽음으로 더욱 값지지만 그래서 먹먹해진다. 라라랜드는 아름답지만 일과 사랑을 동시에 성취하지 못한다. 내가 좋은 평가를 준 영화들은 어딘가 비어있거나 진짜인 줄 알았는데 가짜이거나 성공한 줄 알았는데 실패했거나 상처에 복수하거나 세상이 망한다.

    2022.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