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2019.11.13
리뷰

안본 눈 삽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격렬하게, 안본 눈 삽니다. 먼저,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1%대인 것이 통 아쉽다는 말을 해야겠어. 아무래도 지표는 상관없지만, 시즌제에 대한 기대를 감독과 작가가 열렬히 내 비쳤으니 아쉬운 시청률에 아쉬울 수 밖에.

고백하자면, 뭐 굳이 고백이라고 할 것 까진 아닌데, 내 몸에는 문화 사대주의가 흘러 넘쳐서 한국 영화, 드라마 잘 못 본다. 근데 그게 뭐 내 잘못인가? 쓰레기 같은 콘텐츠 찍어낸 사람들 문제지. 그래서 그런가? 내 오만함이 너무 창피하네. 이 드라마도 방영 중엔 존재도 모르다가,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고 왓챠플레이로 봤는 걸.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이 드라마가 내게 미친 영향은 엄청나. 이런 느낌, 나의 아저씨 때 보다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야. 이 드라마는 위로를 넘어 방향 제시까지 해준다고 해야 하나.

내 얘기를 하자면, 요즘 좀 힘들었어. 전에도 말 했지만 내가 느끼는 힘겨움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기회가 없잖아. 그게 내가 느낀 힘겨움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힘들어도 되는 것인가’ 하고 힘들게 하는 원인이긴 했지. 이 드라마를 보며 느꼈던 건 ‘내가 힘든 건 힘든 게 맞다’ 다른 말로 하면 ‘나만 힘든 건 아니다’. 그게 역설적으로 위로가 됐어. 가장 좋은 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던 것, 부정적인 에너지 발산하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 발산하기. 그게 그냥 되기 시작했다는 거야. 나는 그대로인데 내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 들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 걸지도 모르지.

그냥 문화 콘텐츠로 봐도 완성도가 훌륭하고. 늘어지지 않는 호흡. 지루할 틈 없는 전개. 끊임없는 유머에도 놓치지 않는 감정선. 놀랍게 섬세한 배려. 이렇게 계속해서 이 드라마의 훌륭함을 말하는 이유는, 이 드라마를 아직 경험하지 않은 98%의 TV 시청 인구가 내가 이 드라마를 보고나서 느낀 경험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서야.

이제 내가 좋았던 지점을 짚어볼 건데 그 전에, 연출 정말 좋은데 그 부분은 빼고. 순전히 이야기 관점에서만 얘기할 거니까, 지금이라도 멜로가 체질을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우선 드라마를 볼 것. 이 정도 경고했으면 내 책임은 다 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계속 읽어서 반감될 당신의 경험은 당신의 책임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존중받는 휴식이 좋아. 월미도로 놀러가서 쉬는 사람도. 쉴 거 멀리 가서 쉬자고 해놓고 20정거장 떨어진 월미도에 반쯤 일하러 간 사람도. 전재산을 기부한 기부처에 쉬러 봉사 간 사람도. 심각한 결정을 해야 한다며 조개구이를 먹을지 차이나타운으로 넘어가 만두를 먹을지 결정해야 한다는 사람도. 뭘 고민하냐며 둘 다 먹으면 된다는 사람도.

어떤 연기가 좋은 연기인지 모르겠지만, 못 하는 연기는 안다는 게 좋아. 너 못 하지 않는다는 말도.

술과 음식이 끊임없이 등장한 게 좋아. 평양냉면 먹을 때 정말 잘 하는 냉면집에서 촬영한 게 좋아.

소수자를 이렇게나 평범하게 연출한 게 좋아. 마지막 회에 들어 제 4의 벽을 깨며 앞으로의 전개를 논할 때 효봉이만 나오지 않아 초조했지만, 아주 평범하고 잔잔하게 그려준 게 좋아.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이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에게 아린 사연 있냐는 물음에 나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 행복하게 보내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고 성공했다고 답하면서, 여기 애들 사연 들으면 내 사연이 얼마나 먹먹한 줄 아냐는 게 좋아.

마지막회가 끝나고 나도 이름모를 어린이들을 위해 정기후원을 시작했어. 그건 온전히 긍정적인 경험이었고, 긍정적인 경험은 행동을 만들었지. 내가 조금이라도 멋있는 사람이 되게 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