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8
봐라! 이것이 K-블랙미러다!

먼저 웨이브와 MBC의 과감한 투자에 박수를 보냅니다. K-넷플릭스의 시작이라는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그 시작을 SF 앤솔로지로 결정했다는 점에서요. 꾸준하게 투자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는 그 때가 반드시 오길 바랍니다. 좋은 콘텐츠는 꾸준한 투자에서 나오니까요. 왜냐면 사실 8편을 다 봤는데 이번 시도는 완전히 망해버릴 것 같거든요. 이 실패에서 멈추지 않고 뭐가 문제인지를 깨닫고 개선해서 다음 시도 하기를 바랍니다.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얘길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블랙미러가 잘 만든 SF라는 생각은 없어요. <밴더스내치> 정도 재밌었고, <닥터 후>라던지. <컨택트>나 <블레이드 러너>같은 수작들에 비하면 ‘과락은 면한’ 드라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8편을 모두 본 뒤에야 안 사실인데 <만신>을 제외한 영화들은 원작 소설이 있습니다. 대충격. 아니 각색 과정이 어땠길래?

TL; DR

시간이 소중하지만 SF8을 봐야만 하겠다 하시는 분. <우주인 조안>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두 편만 보세요.

인공지능 소재는 8편 중 5편 등장했고 그 중 2편에 하이엔드 안드로이드가 나옵니다. 공통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인간이고 싶고, 두 편 모두 지능의 존재를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 다루는 안드로이드는 정반대로 묘사되는데, 간호중에서는 극의 엔딩에 가서야 이를 인정받고 인간증명에서는 처음부터 안드로이드의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라는 점. 공통적으로 진부한 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아 K-SF하면 차세대먹거리 AI 그리고 안드로이드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것입니까? 진부하다 진부해.

간호중

간호중 아웃핏은 워쇼스키 자매 <클라우드아틀라스>의 비누먹는 배두나 생각이 났고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이었습니다. 요양병원 창궐 세계관이 간호중 캐릭터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심만 낭낭합니다. 때깔이라도 고와야 할 것을… 엔딩에선 수녀가 간호중의 영혼을 인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연출이 많이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인정하는 수녀가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은데, 도저히 이 메시지에 힘을 쏟았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그 씬에서 오락가락 하는 안드로이드가 어떤 것을 의도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봐야 컴퓨터 알고리즘의 집합이라는 것을 의도 한건지. 근데 그렇다면 수녀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더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 너무나 처연한 모습이 혼란을 가중합니다.

블링크

이번엔 AR 인공지능입니다. 주인공은 어릴적 교통사고에서 자율주행 인공지능에 의해 부모를 잃습니다. 그게 결함이었냐? 아닙니다. 의도된 죽음입니다. 자율주행 인공지능이 사고 시 뒷자석에 탄 주인공을 보호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주인공은 인공지능이 부모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인공지능을 불신합니다. 중반부엔 인공지능을 인정하면서도 운전만큼은 직접 하고요. 부모가 죽고 혼자 남겨지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라는 대사까지. 이게 발전된, 잘생긴 페르소나가 부여된 인공지능을 통해 서서히 인공지능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고, 어릴 적 상처를 치유받는 서사로 읽힐까요? 저는 배은망덕으로 읽혔습니다. 다분히 정신없는 연출과 약한 캐릭터성의 조화가 보기 힘들었습니다. 흔한 클리셰도 등장합니다. 복사하면서 보이는 프로그레스 바. 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급박하게 진행되는 격투 씬. 위기의 순간에 복사는 100%가 되고, 위기의 순간에 완료 버튼을 누르는 주인공! 너무 진부한데요. 게다가 인공지능이 본인을 복사하여(ㅋㅋㅋ) 다른 인공지능을 해킹하는 곳으로 보내는(ㅋㅋㅋ)연출은 진짜 황당합니다. 해킹 과정을 인공지능 캐릭터의 격투 씬으로 표현한 연출은 뭐 구리진 않습니다만 새롭지도 않습니다. 전용선 쓰는지 땅파서 단말기를 땅 밑의 물리망에다가 연결하는 장면도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고요. 이건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하고 간편하게 해킹을 쓴 것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주인 조안

그럼에도 K-SF를 기대하게되는 이유입니다. 8편 중 가장 흥미로운 세계관 설정이라는 생각입니다. 미세먼지로 기대수명이 30년이 된 세상인데요. 미세먼지 항체(?)가 많이 거슬리지만 이건 넘어갑시다. 어쨌든 비싼 미세먼지 항체 아 자꾸 거슬리네… 그 항체는 출생 6개월 이내에 접종해야… 아 진짜 미세먼지 항체는 도대체 누가 생각해낸거지?ㅋㅋㅋ 아 진짜 웃음을 참을수가 없네… 아무튼요 그 항체를 맞은 주인공이 실은 항체 접종이 다른 아기에게 잘못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항체 접종을 하면 미세먼지 전 기대수명을 갖고 살아갈 수 있고요. 기대수명 차이에서 생기는 사회에서의 차별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누구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언더독이 인상깊습니다. 나름의 뻔한 반전이 있고요. 뻔하다는건 사람들이 원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좋았습니다. SF는 설정이 그저 주변의 어떤 것이어야지, 기술이나 설정 그 자체에 너무 포커싱되면 무너지는데 이 영화는 그 선을 잘 지켜냈고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오프닝 씬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바깥 풍경 필터가 제거되며 미세먼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아 이 연출 너무 좋습니다.

만신

이번에도 인공지능입니다. 오늘의 운세 앱인 ‘만신’의 적중률이 9할이 넘어가면서 그 운세에 맞춰 하루를 살아간다는 내용입니다. 벌써 황당하네 정말. 인공지능 개발자 묘사도 기분 더럽습니다. 작가님 제발 개발자 스테레오 타입 만들지 말아주세요. 괴상한 배치의 모니터들과 장비들 설정도 사람 미치게 만듭니다. “만신 서버를 찾아야”한다는 주인공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 만신이 동생에게 어떤 운세를 줬는지 알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는 있죠. 근데 띠용? 내가 헤메던 이 건물들 전체가 ‘만신’이었다니? 뭐 이런 해괴한 설정이 다 있죠? 나는 정말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개발자 인터뷰 딸 의지가 없으시다면 요즘 인터넷 코딩 강의도 많은데 네트워크 관련 수업 한 시간이라도 들어보길 바랍니다. 인공지능을 다룬 5편 중 이 영화가 가장 쓰레기같습니다. 그리고 8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다루는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간편한 탈출구로만 쓴 영화입니다. 언어의 사회성이라는 것이 내가 사는 세계에서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실 거대한 뇌 유기체였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리서치를 열심히 합시다.

하얀 까마귀

아이고 정말 저는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것에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이게 대체 누구의 역량 부족인지 알기 위해서 원작을 주문해둔 상태입니다. 원작은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이던데 제발 연출이나 각색중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이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이라면 K-SF에 대체 어떤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까? 스마트 워치에서 솟아난 핀(인지 주사인지)가 측두엽과 전두엽에 영향을 주고, 그게 서버 과부하(ㅋㅋㅋㅋㅋ)로 인해 깨어나지 못해서 코마에 빠지고, 주인공은 트라우마 극복을 하면 코마에서 깰 수 있지만 (대체 어떻게?ㅋㅋ 아 진짜) 결국 진실을 마주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다는 해괴한 내용입니다. 정말 이해가 안되는데요. 학창시절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짜치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친구에게 접근해서 친해진 다음, 그 친구에게 굉장한 상처를 주는 목적을 달성하고, 그로인해 친구가 자살하자 그 기억을 머리속에서 없애버리고 본인이 그 친구의 이름을 훔쳐 인터넷 게임방송을 하다가 그게 시청자에게 발각되고 굳~이 그 채팅을 읽어 부스럼 만드는 내용입니다. 중간 공포연출은 이도 저도 아니고요. 쓰레기 같은 영화.

증강 콩깍지

이번엔 그나마 좀 낫습니다. 아니 사실 문방구에서 파는 돈까스 맛이에요. 이런 것 밖에 모르면 맛있다고 먹을테죠. 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냐?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가 SF8 앤솔로지에 포함되어 있는 것 자체가 실망스럽습니다. 기술이 그 뭐냐 그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받는 대우정도로 쓰였습니다. 이럴 거면 뭐하러 공상과학 영화라고 하는거죠? 페이스북 광고 영상에서 볼 법한 니플패치를 측두엽에 붙이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가상공간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다고?! 넷플릭스 블랙미러 <스트라이킹 바이퍼스>가 생각이 나는데요. <써로게이트> 느낌도 살짝 있고. 그런 엄청난 기술이 있는데 데이팅만 한다고? 나 참. 게다가 제목에 오류도 있는 게 증강현실은 현실에 그래픽을 입히는 건데요?? 어감을 위해 오류를 택한 경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쓰레기같은 영화.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다시 또 K-SF에 기대를 걸 게 하는 영화인데요. 이런 유머 너무 좋아. 종말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증오가 아닌 사랑이어야 함을. 그럼에도 주인공은 고통받고… 중간중간 맥거핀 몇개 등장하고 떡밥들 나오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고 마지막 부분에서 한번에 다 이해 될 내용들. 더 할 코멘트가 없습니다. 잘 만든 영화.

인간증명

다시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입니다. ‘왜 날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거야!’ 하는 류의 자아찾기는 너무 많아서 진부해요. 다만 이 경우는 사람의 뇌와 그를 보조하는 인공지능, 그리고 안드로이드 바디 조합인데요. 인공지능이 사람의 뇌를 죽이고 본인이 그 주인이 되는 설정은 재미있습니다. 또 흥미로운 건 처음부터 안드로이드에 권리와 책임이 부여되었다는 건데요. 안드로이드가 교도소에 수감되고 재판을 받는 세상인데, 자아찾기 하는 것으로 보아 ‘로봇권’의 과도기를 그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공지능을 그린 5편 중 가장 낫습니다. 그래도 진부한 건 진부한 거고.

아 왠지 SF8 실적 보고 투자 규모 줄일 것 같은 느낌. 불길하다 불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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