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Driven OKR

성장방법론으로 OKR을 도입하는 기업이 많은데요. OKR은 업무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강남언니에서는 2019년 하반기부터 개인의 성장을 위한 OKR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강남언니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중인 웹개발자 치치입니다. 4월 한달간 훈련소에 갔다 왔습니다.

훈련소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너무 새삼스럽나요?)

파이썬이나 자바 코드를 실행해 볼 수도 없고 자바스크립트의 재미난(?) 타입에러를 볼 수도 없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위키피디아에 접속할 수 없고 인터넷의 무궁무진한 정보를 연결하여 의미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행히 책을 읽을 시간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훈련소에 개발서적 가져가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 코드가 등장하는 실무에 가까운 책은 실제 실행과 디버깅이 불가능합니다. 코드를 그냥 읽는 것과 실제로 실행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보다 더 추상적인—설계 혹은 이론적인—내용일 경우 그 내용을 토론할 사람이 없습니다. 산업기능요원 중 개발자 비율이 극히 낮은 까닭입니다. 그리고 피곤합니다. 열심히 발전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열정은 존중하지만, 장담컨대 테드 창 단편집 두 권 가져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입니다.

대신 OKR을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저는 한달을 최대한 발전적으로 살아내기 위해서 개인적인 OKR을 진행했습니다.

후회없는 사람 되기

저는 후회가 많은 편입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제 때 적절히 표현하지 못 한 일이 하루종일 저를 괴롭히고 밤잠 설치게 합니다. 그나마 고마움은 며칠 묵혔다 전해도 괜찮지만 미안함을 전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최악입니다. 저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고 싶고, 인구밀도가 높아 상호 인터렉션이 빈번한 훈련소는 이 점을 개선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OKR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정해졌습니다:

Object: 후회없는 사람 되기

Key Result:

  • 하루에 미안함 표현 5회 하기
  • 하루에 고마움 표현 10회 하기

이 수치는 문득 생각했을 때 달성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미안한 일을 하루에 5번이나 만들어야 하고 고마운 일은 10번이나 발생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생각보다 미안하고 고마운 일은 여기저기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줄줄히 걷다가 앞사람 발을 밟았을 때, 지나가다 스칠 때, 빗자루질을 하다가 옆에 먼지가 튈 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배식 반찬을 받을 때, 보급품과 인터넷편지를 받을 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는 이런 종류의 일들에 사과나 감사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이것을 개선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기준을 세우고 첫 2주 동안은 눈에 띄는 행동 변화가 없었습니다. 다만 미안함을 표현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쳤다는 사실이 더 깊게 각인되고 더 짙은 후회가 남았습니다.

또한, 이런 사건 하나하나가 수치화되어 인식되기 시작했고 미안한 일 5개와 감사할 일 10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하겠다는 안도(?)를 했습니다.

3주차에는 여전히 고맙고 미안한 일의 대부분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지만 그 중 3할은 즉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점점 회색영역이 명확하게 인지되었습니다. 상대방의 호의가 달갑지 않거나, 내 실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발생하는 사건입니다. 전자는 아직까지도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쓴다면 ‘No, thanks’ 했겠죠. ‘괜찮아요, 고마워요’는 좀 이상하고 ‘고마운데 괜찮아요’도 역시 좀 이상합니다. 후자의 경우는 정말 당황스러운데요. 상황 인지 자체가 다를 경우엔 정말 환장합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할 수는 없으니까요.

4주차 목표는 이런 회색지대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 제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3주차보다 약간 개선되었지만 5할은 여전히 힘듭니다.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드디어) 끝이 났지만 이 OKR은 계속 이어서 할 예정입니다.

추가적으로, ‘바른 식습관 갖기’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Object: 바른 식습관 갖기

Key Result:

  • 일주일에 배앓이 1회 이하 (저는 배가 자주 아픕니다)
  • 음식을 삼키기 전에 50번 씹고 삼키기

이건 좀 쉬웠습니다. 식사를 할 때 이 목표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저작운동을 오래 하고 음식을 삼킬 수 있었고, 수료할 때 즈음 해서는 의식하지 않아도 음식의 종류에 따라 씹는 횟수를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자 여러분! 훈련소는 내 행동양식을 개선하기 위한 최고의 테스트베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OKR을 통해 행동양식을 개선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끝으로, 훈련소에 갈 예정인 산업기능요원 여러분 모두 다치지 말고 몸 조심히 건강히 다녀오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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