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onentChunkName":"component---src-templates-blog-post-js","path":"/post/5월-30일-새벽-1시에/","result":{"data":{"markdownRemark":{"frontmatter":{"title":"5월 30일 새벽 1시에","subtitle":null,"date":"2026.05.30","category":"post"},"html":"<p>나는 꽤 빡센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게 청소년의 말랑한 뇌에 어른이 정보를 주입하는 쉬운 방법을 택한건지 아니면 진짜 교리인지 아니면 특정 교파에서만 그런건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내겐 이해되지 않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예를들면 성경의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구절을 이유로 불상 숭배하는 불교는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궁금해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면서 라이브오브파이는 좋은 영화라며 단체 관람하고, 불상도 그저 십자가같은 상징물로 쓰이는 게 아니냐는 질문은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왜 예수님에게 관심이 생겼냐며 의도를 의심받는 식으로 답변을 거부한다던가.</p>\n<p>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혼란스럽던 순간에는 '나만 답답할 순 없지'하는 억하심정으로 나 스스로도 그것을 무기삼아 휘두르다가. 누군가 나를 괴롭게 한다고 해서 나도 같은 방법으로 누군갈 괴롭힐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나서는 상대방이 내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림짐작하거나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경우가 내 역린이 되어 팔짝팔짝 뛰게 된 것이다.</p>\n<p>그러니까 이런 성향은 기질이다. 이런 기질을 가지지 않은 아이들 대하듯 대해도 안 먹히니 당시의 어른들은 나를 다루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어떡해. 모든 사람은 자신이 편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이유는 그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편한 뱡향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온갖 회의와 온갖 추가근무와 온갖 학습을 하면 스트레스도 함께하지만, 그걸 하지 않았을 때의 스트레스가 훨씬 크기 때문에 더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조정된다는 거다. 그 흐름을 거스르면 진정하고 순수한 고난을 받는다는 얘기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의문들을 잠재우고 어른들이 주입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큰 고난이었을거다.</p>\n<p>그런 반면에 생각을 언어로 교환할 때 의식적으로 필터를 지나게 하기도 한다.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잠시라도 긴장을 놓으면 후회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편협성이다. 혹여 나의 편협성을 드러낼까 의도적으로 하는 검열이다. 나의 편협함으로 지워질 많은 존재에 대해서. \"비개발자\"를 의식적으로 발화하지 않는 것이 그런 필터를 지난 결과 중 하나다. '비-무엇' 은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 쓰여야 한다. 소수와 약자가 배제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을 중심에 놓아야한다. 그러나 개발자는 오히려 시장의 중심에 있으며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다. 디자인, 마케팅, 법무, 회계, 인사 등 다른 모든 전문가를 비개발자로 통칭하는 것은 그들의 전문성을 지우고 단지 코딩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단어인 까닭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건 기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건 노력.</p>"}},"pageContext":{"slug":"/5월-30일-새벽-1시에/","previous":{"frontmatter":{"title":"유리","category":"post","subtitle":null,"date":"2026-05-03T00:00:00.000Z"},"fields":{"slug":"/유리/"}},"next":null}},"staticQueryHashes":["3000541721","3159585216"]}